모든 것이 만족한 상태가 아닌, 하나라도 만족한 순간이 있다면,
그것을 '완벽한 하루'로 정의합니다.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쓰면서, '완벽한 하루'를 발견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김영태 작가

체대 입시를 준비했을 때, 저의 특기는 중장거리 달리기였습니다. 
근력 종목이 약했던 저에게, 중장거리는 자존심과 같은 종목이었습니다. 같이 운동했던 동기들한테도, 이 종목만큼은 선두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달렸던 기억이 납니다. 약점을 보완하기보다 강점을 더욱 견고히 해야 한다는 마음이, 어쩌면 이때부터 시작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학마다 시험 보는 거리가 달랐는데, 2,000mm가 가장 많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제가 시험 본, 지방의 국립대학도 2,000mm였습니다. 만점 기준은 6분 52초로 기억됩니다.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기억하는 이유는, 6분 50초로 만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조를 나눠서 달렸는데, 같은 조에, ‘서울 체고’ 유니폼을 입은 사람이 보였습니다. 신발도 트랙 전용 스파이크를 신고 있었습니다. 아마추어 사이에 프로가 끼어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자존심과 같은 종목이라 조에서 반드시 1등을 하겠다고 다짐했는데, 시작 전부터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400mm 트랙이었기 때문에, 5바퀴를 달려야 했습니다.
총소리가 울리고, 서서히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중장거리는 초반에, 어떻게든 선두그룹에는 있어야 치고 나갈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빨리 달리는 사람이 있더라도,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어느 정도는 따라가야 합니다. 2바퀴 정도 지나면 서서히 그룹이 구분되기 시작하고, 3바퀴가 넘어가면 거의 그대로 유지됩니다. 선두그룹을 유지하고 있다가 4바퀴에 들어갈 때, 조금 더 치고 나와 맨 앞에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서울 체고’ 유니폼을 입고 있는 사람은, 제 뒤에서 쫓아오고 있었습니다. 

‘저렇게 뒤에서 쫓아오다, 마지막 바퀴에서 엄청 치고 나가겠지?’
차라리 빨리 치고 나가길 바랐습니다. 거의 마지막에 역전되는 그림보다, 그전에 뒤처지다 지는 그림이, 그나마 덜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5바퀴에 들어가고 조금 지났는데도, 비슷한 간격으로 유지하면서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계속 신경이 쓰였지만, 페이스 유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되도록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달리다 결승점에 거의 다다랐을 때, 살짝 뒤를 돌아봤습니다. 그 친구는 아까보다 몇 보 더 뒤에서 오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제가 제일 먼저 결승점을 통과했습니다. 그 친구가 전력으로 달리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자존심을 지켰다는 생각에, 뿌듯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중장거리 달리기를 완주하기 위해서, 넘어야 할 고비가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숨이 턱 밑까지 차고 오르는 느낌을 받을 때입니다. 숨쉬기가 힘들어지고, 입이 바싹 마릅니다. 그냥 멈추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해지는 순간입니다. 하지만 그 고비를 넘기면, 평온한 상태가 찾아오고 유지하기 어렵지 않게 됩니다. 의식하지 않아도, 달리게 되는 단계가 옵니다. 호흡이 규칙적으로 이루어집니다. 내가 달린다는 느낌이 아니라, 밀려 나아간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무리하게 속도를 내지 않는 이상, 무리 없이 결승선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어떤 분야든 많이 해보면,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경지에 이르는 것은, 끌려가는 것이 아닌,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는 것을 말합니다. ‘생활의 달인’에 나오는 분들처럼은 아니더라도, 능숙함으로 여유가 느껴집니다. 그런 경지에 오르는 데 필요한 것이, 멈추고 싶은 고비를 넘기는 것입니다.

인내를 통해 고비를 넘기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경험이 아니면 얻을 수 없고 경험을 통해 얻은 이것은, 나만의 무기가 됩니다. 중요한 것은,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문서나 자료는 누구든 가져갈 수 있습니다. 그런 무기는 그리 강력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 머리와 가슴에 담긴 경험은, 누구나 얻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그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경쟁력입니다. 그런 경쟁력만이, 개인이 조직을 이기는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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