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양 신부(가톨릭대학교 교수, 교황청 국제신학위원)

이탈리아 로마에 위치한 바티칸 교황청 안에는 귀중 예술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바티칸 박물관(Vatican Museums)이 있다. 이 유명한 박물관의 백미는 그 안에 있는 시스티나 성당(Sistine Chapel)에 그려진 프레스코 벽화라 할 수 있다. 시스티나 성당은 가톨릭교회의 새로운 교황 선출을 위한 추기경단 비밀 선거인 콘클라베(conclave)의 장소로도 널리 알려진 곳이다.

여기에는 서구 르네상스 시대 미술의 최고 거장으로 손꼽히는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가 그린 프레스코 벽화가 있다. 1508-1512년에 걸쳐 그려진 중앙 천장화가 가장 유명하다. 이는 9개의 연작으로 구약 성경 창세기(Genesis) 1-9장의 창조 이야기를 묘사한다. 그리고 제대 벽면에 그려진 ‘최후의 심판’이 또 하나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종말의 심판에 관한 성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이 작품은 중앙 천장화가 그려진지 23년이 지난 후인 1535-1541년에 걸쳐 만들어졌다. 많은 분들이 여행이나 순례 등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혹은 사진과 영상을 통해 간접적으로 이미 접했던 작품들이리라 생각된다.

9개의 연속적인 주제화로 이루어진 시스티나 성당의 중앙 천장화는 성서적 창조 이야기의 내용을 미켈란젤로가 바라보는 관점에서 해석해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이는 우주와 세상의 기원, 그리고 인간의 창조에 관한 성찰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우주와 세상과 인간의 창조 과정이 어떠했는가를 매우 사실적인 뉴스 보도처럼 전하고 있는 것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그 안에 담긴 성서의 핵심 메시지를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창세기의 첫 시작 1장 1절은 ‘한처음’에 하늘과 땅이 창조되었음을 증언한다. 여기에서 ‘한처음’이란 모든 것에 앞선 시작의 순간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정확히 말해서 현재의 수량적 시간 개념이 적용되기 이전의 절대적 기원(起源)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늘과 땅”이란 모든 세상과 우주 전체를 가리키는 상징적 표현이다.

창세기 1장 2절은 창조 이전의 상태가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 있었다고 묘사한다. 아직 시간 개념도 성립되지 않았으며, 세상 모든 것이 제대로 형태를 갖추지 못하고서 어둠 상태에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여기에서, 심연을 덮고 있는 어둠이란 빛이 없는 상태를 가리키는 자연적 어둠이라기보다는, 바로 혼돈(chaos) 상태의 특징으로서의 어둠, 즉 무질서에서 생겨나는 위협과 공포를 의미하는 어둠을 의미한다.

미켈란젤로가 그린, 총 9개로 이루어진 시스티나 성당 중앙 천장화 중 처음의 세 가지는 바로 이러한 ‘하늘과 땅’의 창조를, 즉, 우주와 세상의 생겨남에 관한 메시지를 전한다. 그중 첫 번째 그림은 창조의 맨 첫 번째 날에 이루어진 역동적인 위업으로서 혼돈의 어둠 속에서 빛이 드러남을 묘사하는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프레스코화에서는 정적(靜的)이 아니라 매우 동적(動的)인 형태로 이 사건이 표현된다. 강한 돌풍에 휩싸인 채 비스듬히 기울어져 옷자락을 휘날리며 회전하고 있는 것 같은 창조주의 모습은 마치 미국 중서부에서 자주 일어난다는 회오리바람 ‘토네이도’(tornado)에 휘말려 공중으로 떠올라가는 사람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바로 이러한 상징적 표현에서 첫 창조의 극적인 역동성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빛’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실, 자연계에서 우리에게 빛을 발하는 것은 바로 태양과 같은 항성들이다. 그런데 해와 별들이 창조되는 것은 창조의 네 번째 날에 이르러서이다(창세 1,14-18 참조). 따라서 창조의 첫 번째 날에 이루어진 ‘빛’의 창조가 뜻하는 것은 ‘빛’ 자체라기보다는 ‘빛’이라는 상징을 통해 드러나는 그 어떤 실재의 창조에 대한 암시라 할 수 있다.

그 실마리는 바로 “빛과 어둠을 가르시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다.”(창세 1,4b-5a) 하는 성경 대목에서 찾아볼 수 있다. 빛이 생겨난 결과로 낮과 밤의 개념적 구분이 비로소 생기게 되었고, 이는 결국 ‘시간’(time)이라는 실재가 처음 탄생함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서, 창조의 첫 순간에 탄생한 것은 ‘시간’인 것이다.
어둠의 혼돈 속에서 빛이 드러남은 시간 질서의 성립을 의미한다. 시간성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는 매우 의미심장한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사실, 혼돈과 대비되는 ‘질서’ 개념이야말로 창조의 핵심 포인트라 할 수 있다. 창세기의 창조 개념은 혼돈으로부터 질서에로의 점진적인 전환을 드러낸다. 시간은 그 가장 첫 번째 질서인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날 우리는 생태학적 관점의 ‘창조질서 보전’이란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나 자신은 과연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혹시 어둠의 무질서가 내 삶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니면 나는 빛의 질서 안에 살아가고 있는가? 어둠의 혼돈 즉, 무질서는 파괴적인 에너지로 작용하고, 반대로 빛의 질서는 창조적인 에너지로 작용하며 우리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어둠의 무질서가 아닌 빛의 질서 안에서 평화의 도구(channel of peace)로 살아가며 그러한 창조적 에너지를 세상에 널리 전파하고자 했던 분,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1181/1182-1226)의 기도문이 떠오른다.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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