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정정석 수의사

대한수의사회 제공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대동물 수의사로 현업에 종사하고 계신 장인어른이 한 10년 전에 의문의 피부염으로 꽤 오랜 기간 고생하셨던 적이 있었다. 5년 전쯤에도 살인진드기(SFTS)에 감염되어 사경을 헤맨 적이 있으셨으니 수의사란 직군은 인수공통 전염에 취약한 분야라서 여간 힘들고 어렵고 위험한 직업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감염에 대비하고 전염 가능성에 위생을 철저히 하여 미연에 예방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장인께서는 어느 날부턴가 양 팔뚝 피부에 이상이 생기더니 각질과 심각한 소양증을 호소하시며 알 수 없는 괴질에 시달리셨다. 주무시는 동안 본능적으로 벅벅 긁어서 자상이 심각했고 뱀의 피부처럼 각질이 일어나면서 반점이 산재했다. 송아지로부터 이환된 피부염 같았지만, 병변이 불분명하고 마진이 선명하지 않아서 딱 잡아 뭐라고 말하기도 뭐한 양상이었다. 아마도 느낌은 곰팡이성 피부염 같았지만, 경계가 미미하고 가피가 별로 없어 나의 추정은 메롱일 수밖에. 더구나 내가 의사도 아니니 딱히 진단할 입장도 아니었다. 극심한 소양감 때문에 장인께서 힘들어하심을 장모님께 전해 들었는데 안쓰럽고 도움이 못되어 죄송했다. 나 또한 겨울철만 되면 알러지가 올라와서 수개월 동안 온몸을 긁어봐서 그 고통을 조금은 알기에 마음이 쓰였다. 

기다려봐도 낫질 않자 웬만하면 병원에 안 가시는 분인데 자발적으로 피부과를 내원하여 진단과 치료를 받기 시작하셨다. 그러나 일반적인 연고와 내복약으로는 거의 차도가 없었고, 증상은 갈수록 악화되었다. 이 병원 저 병원 다녀봤지만, 원인에 대한 속 시원한 답변을 듣지 못했고, 그렇다고 산탄처방이 탁월하게 효능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 괴로움은 날로 더해갔다.

설상가상으로 외려 괴질환은 악화되어 전신에 가려움과 발진으로 발전했다. 진료 업무를 보기 힘들 정도로 피부 건조증이 매우 심하고 극심한 소양증으로 self-trauma가 발생하여 긁은 자국과 피딱지가 많았다. 그야말로 피부병으로 만신창이가 되어갔다. 

6개월 이상을 그렇게 힘들어하시다가 용하다는 양/한방병원을 수소문하시게 되었는데 그날도 낫겠다는 의지와 기대감을 가지고 공주에 있던 어떤 병원에 내방하셨다.(후일 들었던 이야기를 재구성해본 내용이다.)

장인께선 지금은 70대 후반이시라서 머리숱이 상당히 줄었지만 10년 전엔 흰머리도 하나 없으시고 나름 풍성한 머리칼과 짙은 눈썹을 지니셨다. 특히 특징적인 눈썹이 인상적이었는데 장인어른의 아버님, 그러니까 내 아내의 친할아버지의 유전적 영향을 많이 받으셨다. 그건 바로 눈썹털이 전방으로 자라는 것이었는데 다듬지 않으면 계속 자라나서 옆에서 보면 기다란 눈썹이 마치 더듬이처럼 삐죽 삐져나와있는 진귀한 모습이셨다. 그래서 가끔 처가에 가면 아내가 웃자란 눈썹을 가위로 다듬어드리기도 했다. 모든 눈썹털이 전방으로 자라나는 건 아니었고 대부분은 모로 누워 성장했지만, 그중에 굵은 수십 가닥이 앞으로 자라나서 신기했다. 어찌 보면 장인어른의 독특한 시그니처이자 관상적 매력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공주 소재의 그 피부과를 방문했을 때 장인어른의 그 문제의 눈썹이 유독 그곳 직원들의 눈길을 끌었다. 진료 접수를 하시고 대기하고 있는데 여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다고 한다. 장모님께서 동행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직원 : 죄송한데 아저씨는 무슨 일 하세요?

정겨운 지방 소도시의 친근함이 그려졌다.

장인어른 : 허허. 별게 다 궁금한가보네.

직원 : 아저씨 눈썹이 예사롭지 않아서요. 그냥 한번 물어봤어요.

장인어른께서는 당신의 눈썹 중 길게 뻗어 나온 눈썹 털을 매만지시며 묘한 미소를 지으셨다.

장인어른 : 내가 좀 눈썹이 특이하지. 하하하.

말을 아끼시는 장인어른에게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지만 그녀는 손으로 턱을 괴며 스무고개를 시작하고 싶어 했다. 남의 일에 호기심이 많은 처자였나 보다.

직원 : 아저씨! 제발 말해주세요. 범상치가 않아서 그래요. 힌트 좀 주세요.

투머치토커의 집요함을 은근 즐기시던 장인어른은 차마 본캐 수의사라고 말하지 못하시며 부캐로 신비주의 컨셉을 지대로 장착하셔부렸다.

장인어른 : 알아서 뭐하게?

직원 : 평범한 분이 아닌 거 같아요. 아~! 이거 궁금해 미치겠네.

장인어른은 여운을 남기시고 당신의 차례가 되자 몹쓸 피부병을 고치러 진료실로 냉큼 숨어 들어가 버리셨다. 그 직원이 애가 타서 안달복달하며 발을 동동 구르게 만드시곤.

단 몇 분 만에 피부 진료를 마치고 데스크로 나오신 장인어른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그 직원, 얼마나 궁금했으면 또 시작이었다. 골똘히 유추하며 생각의 범위를 좁혀갔던지 직원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승리의 환호성을 지르듯 자신 있게 툭 떡밥을 던졌다.

직원 : 아저씨, 그냥 직장인 아니시죠?!!

탐정놀이에 재미를 붙였는지 기어코 장인어른의 직업을 파버리려고 작정을 한 것 같았다.

장인어른 : 회사는 안 다니지. 하하하. 그만 물어봐.

동물병원 원장이니 당근 직장인은 아니니 애간장을 타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이젠 장인께서도 싫지 않은 눈치로 여운을 주며 여백의 미를 뿜뿜하시기 시작했다.

직원 : 아저씨 눈썹만 보면 단번에 알죠. 절대 평범한 일을 할 사람이 아니란 걸.

눈썹이 그리 특이한가? 장인께서는 거울에 비친 당신의 모습을 보시며 범상치 않음에 갸우뚱하셨다. 그런데 직원은 문득 묘안이 떠올랐는지 손으로 무릎을 치며 깨방정을 떨었다. 그러더니 뭔가 냄새를 맡았는지 박장대소를 하며 장인께 팩트 체크를 시도했다.

직원 : 알았다!!!! 아저씨 뭐하는 사람인지 이제 알아냈어요. 우하하하하.

장인어른 : 뭘 할 사람처럼 보이는디?

그러자 여직원은 캐발랄하게 확신하며 대답했다. 빼박 확정적 손가락질과 함께.

.

.

직원 : 아저씨, 도사죠!?!

수의사, 도사, 같은 '~사'자 직업이긴 한데 너무 멀리 갔다. 도리 없이 도인의 눈썹 아우라 때문에 계룡산 배추도사로 둔갑하셔야 했다. 예컨대 불법을 닦던 도사는 하산하여 세속 보살들에게 보시를 행하며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고 있던 차에 피부에 문제가 생겨 병원을 찾았다고나 할까. 줄여서 마운틴 불법 다운로드.(재탕인데 업그레이드죠)

JTL이 부릅니다. # A Vetter, 아니 A Better Da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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